▲ 도 성 희(大記者)



한국 현대 정치사에 있어서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을 빼놓고서는 논의가 성립되기 어렵다. 가히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가장 치열하게 시대적 간난을 풍미한 핵심적 위치에 자리한다. 상호 입장과 견해는 달랐으나, 국가에 대한 헌신의 질량은 여전한 넘사벽으로 존재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14주기 추도식을 맞은 지난 23일, 여야 정치권이 김해 봉하마을에 모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진영 결집을 통한 내분을 가라앉히고, 국민의힘은 외연을 확장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도 화환을 보내 추모했다.

여권이 김기현 대표 체제를 맞은 이후 영호남 지역갈등 해소를 위한 상징적 행보에 신발끈을 조이고 있다. 윤 대통령과 함께 지난 광주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도 국민의힘 의원 대부분이 참석하기도 했다. 부동층 견인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임팩트 강한 언사와 인권 변호사로 진보층 사이에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임기 중 발생한 경기도 평택 대추리 사태를 들여다보면, 언행 부조화가 매우 심각한 것임을 파악하게 된다. 심지어 군대까지 동원해 주민들 시위를 무자비하게 제압했다. 전두환 신군부 이래 군인들이 민간인 시위를 폭력 진압한 사태로 얼룩져 있다.

당시 대추리 주민들은 토지 보상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로 쫒겨날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권은 지역 주민들과의 대화를 거부한 채 밀어붙이기로 일관했다. 끝내 토지를 헐값으로 강제수용하고 주민들을 대책없이 쫓아내고 말았다. 비극의 발단이 되었던 셈이다.

그 과정에서 진압대에 의해 구타당한 주민들 머리와 얼굴에서는 혈흔이 낭자했다.

그런가하면 가장 많은 노동자 해고, 가장 많은 노동자 구속, 가장 많은 노동자 사망도 노무현 정권에서 벌어진 참극에 다름 아니다. 군부 독재 시절에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임을 내세우던 시절에 발생했다. 입술로는 참여정부를 표방했으나, 실상은 불통정부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가하면, 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권양숙 여사가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게 건네받았다는 의혹을 낳았던 650만불과 관련해 조사를 받는 도중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퇴임 이후 발생한 비극이었다. 이에 측은지심이 일게 된 여론을 발판 삼아 스스로 폐족임을 선언했던 이들이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어두운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난으로부터의 탈피, 강력한 산업화 정책은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결정적 요인이 됐다. 1977년, ‘근로자 사회의료보험’을 도입해 가난한 사람도 치료받을 수 있는 초석을 놓기도 했다. 그 모두가 그의 강인한 추진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와 가장 대척점에 섰던 김대중 전 대통령, 민주화를 일구어내는데 혼신을 다했다. 인권신장에도 기여한 바가 실로 크다. 대통령 재임과 함께 떠안은 IMF를 단기간에 극복한 점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디지털 강국 통한 제2의 경제 도약을 이룰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들 두 전직 대통령의 추도식에는 여야가 함께 하지 않고 있다. 우리 정치사에 가장 위대한 족적을 남긴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심각한 결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반면, 가족 비리 문제로 조사를 받는 와중에 목숨을 끊은 전직 대통령 추도식에는 여야가 집결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산업화와 민주화, 우리 모두에게 위대한 유산이자 소중한 자산이 되어 있다. 이들 두 영웅의 조우를 통해 후손들에게 더 좋은 나라를 물려 줄 수 있어야 한다. 분열과 반목을 딛고, 화해와 협력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세계 속의 선도국으로 우뚝 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윤석열 정부에게 맡겨진 시대적 과업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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