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출마 선언문 읽으며 입술 깨문 나경원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당대회 불출마 선언문을 읽으며 입술을 깨물고 있다. 2023.1.25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결국 당권 도전장을 내려놓으면서 정치인생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보수정당 4선 국회의원, 자유한국당 시절 원내대표를 지낸 경험과 당내 견고한 지지층을 내세워 집권여당 사령탑 자리를 노려봤지만, 후보 등록도 하지 못한 채 하차했기 때문이다.

높은 대중적 인지도와 보수층 내 지지기반으로 당내에서 드문 '스타 중진'인 나 전 의원은 지난 연말부터 당 대표 출마설이 거론됐다.

올해 초까지도 나 전 의원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대표 적합도 1위를 차지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나 전 의원은 한 달 넘게 당 대표 출마를 고민해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에서 해임되고 대통령실·친윤(친윤석열)계로부터 거센 불출마 압박을 받는 등 마찰이 계속됐다.

친윤을 자임한 나 전 의원으로서는 '반윤'(반윤석열) 낙인까지 선명해지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설 연휴를 기점으로 여론조사 흐름이 불리하게 돌아간 것도 악재였다.

이러자 나 전 의원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 분위기가 최근 며칠 새 급격하게 불출마로 돌아섰다는 후문이다.

▲ 전대 불출마 선언 뒤 퇴장하는 나경원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전당대회 불출마 기자회견 뒤 퇴장하고 있다. 2023.1.25

 

윤심에 가로막힌 나 전 의원의 향후 정치적 행로를 두고서는 전망이 분분하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4년 넘게 더 권력을 쥘 용산과의 관계 설정이다.

양측 상황에 정통한 한 여권 인사는 통화에서 "이제 와서 대통령실 인식이 바뀌기엔 감정의 골이 너무 깊다"며 "다만 불출마가 여권 전반에 대한 평가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에 따라 그의 역할과 미래도 유동적일 수 있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

나 전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불출마에 대해 '당의 화합', '총선 승리'를 위한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도 향후 정치적 공간을 만들기 위한 명분쌓기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출마를 접은 그 자체로 정치 인생에 치명상을 입었다는 해석도 있다.

주류 친윤계와 맞서는 결기를 보이다가 결국 '백기'를 든 것은 중진 정치 지도자로서 위상에 심대한 타격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나 전 의원이 불출마 결정을 설명하며 "용감하게 내려놓았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시선을 의식한 걸로도 보인다.

▲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교섭단체대표 연설지난 2019년 3월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대표 연설을 하고 있는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이날 나 전 의원이 회견장에 입고 나온 초록색 바지 정장은 공개석상에서 여러차례 포착된 옷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차분하면서도 강인한 인상을 남긴다는 평가에 평소 '전투복'으로 즐겨 입는다고 알려졌다. 2019년 3월 12일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던 날에도 같은 옷을 입었다.

나 전 의원은 이날 불출마 선언 후 서울 시내 한 음식점으로 이동해 오찬을 함께했다. 그간 나 전 의원을 도왔던 정양석·박종희·윤종필 전 의원, 김민수 국민의힘 혁신위원을 포함해 2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자리에서는 서로 전당대회 출마를 고민하는 과정의 소회와 정치적 진로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나 전 의원은 향후 계획에 대해 말하며 "이게 끝이 아니다"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면한 전당대회를 포함해 당 안팎에서 일정 부분 역할이 있을 것이라는 취지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다만 그러면서도 참석자가 "김기현 의원이 자택 앞에서 '뻗치기'(무작정 기다리기)를 할 텐데"라고 농담을 건네자 "집에 못 들어가겠네. 지하 주차장이 없어서 출입 통제가 안 되는 아파트에 살아서 힘들다"며 호응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불출마 배경을 두고 세간에서 남편 김재호 부장판사의 반대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도는 데 대해선 "사실이 아니다"며 노환 등으로 투병 중인 부친의 반대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반주를 곁들인 오찬은 2시간가량 이어졌다. 일부 참석자들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고, 나 전 의원은 "도리어 홀가분하다"며 다독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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